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마지막 이어북 (Year Book)

아들이 이어북(Year Book)을 가지고 와서 펼친다. 고등학교에서 받은 마지막 이어북이다. 지난 1년 동안 있었던 일들이 소중한 기록으로 들어 있는 이어북은 아들의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두툼하게 담아내고 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사진은 물론, 많은 클럽들의 활동과 여러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학생들의 모습이 실려 있다. 그야말로 한 해 동안의 학교 학생들의 총체적인 기록이다. 초·중·고 시절, 오직 졸업하던 해에만 졸업 앨범을 받았던 나에게 아들의 ‘이어북’은 생소한 것이었다. 그러나 ‘해마다 졸업 앨범 같은 것을 만들다니, 과연 그것이 좋은 것인가’ 라고 생각했던 나도 몇해 지나지 않아서는 익숙해지게 되었다. 해마다 학생들의 사진과 함께 시사적인 일들까지를 기록하여, 말 그대로 학생들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이어북은 학생들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일년 내내 이어북에 실릴 내용을 계획하고 취재하는 학생들의 수고와 노력이 없다면, 이어북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성과물로만 비교해도, 내가 중학교 때 속해 활동했던 교지편집위원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어북을 만드는 학생들은 많은 일을 한다. 나는 전에 이어북을 만드는 학생들로부터 이어북이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작품’인지를 들은 적이 있다. 몇 일, 몇 주, 몇 달이 아니라 한 해를 꼬박 써서 만드는 이어북이 여러 차례의 교정 끝에 인쇄되어 손에 들어오면 그들은 소리를 지르고 기뻐한다. 이어북은 나중에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유명인이 되면 그들의 학생 시절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유명인들의 이어북, 즉 유명인들의 학생시절 사진을 싣고 있는 이어북은 경매 사이트에서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 유명 가수, 영화 배우, 정치인 들의 학생시절을 보여주는 이어북은 주로 같은 학교 동창들에 의해 공개되며, 수천 달러를 호가하는 가격으로 판매되는 이어북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들은 자기가 실린 페이지를 열어 내게 보여준다. 음악 활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큰 사진으로 실려 있다. 두 페이지에 실린 네 명의 아이들은 나름대로 학교에서 음악으로 ‘튀는’ 아이들이다. 뛰어난 수준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하는 아이들 중에, 아들은 편곡을 하고 작곡을 하면서 남성합창단을 이끌었다고 소개되어 있다. 이제 이 기록은 평생 동안 아들에게 남을 기록이다. 그런데 아들이 또 한 페이지를 열어 보여준다. 그 페이지에는 아들이 음악을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내가 반대했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들이 어떻게 아빠인 나를 설득했는지도 쓰여 있었다. 나는 그 때, 아들이 무난하게(?) 인문학 분야를 공부한 후 로스쿨에 가기를 원했었다. 트롬본 레슨을 제외하고는 그 때까지 아들이 한 번도 음악 분야의 레슨을 받은 적이 없었기에, 나는 아들의 재능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아들의 재능을 확실하게 알았다면, 나는 주저없이 그 길을 가라고 했을 텐데, 나는 자신이 없었다. 아들은 길고 긴 길을 거쳐서 나를 설득했다. 자기가 만든 음악을 컴퓨터로 연주시켜 나에게 들려주는 것은 예사였고, 자기가 만든 음악을 연주하는 콘서트에 나를 가게 했으며, 명문 로스쿨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해서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게 했다. 음악을 공부해도 후에 로스쿨에 갈 수 있다는…. 아들은 그렇게 해서 자기 생각을 관철했다. 이어북에서 아들은 끝내 자기가 이겼다고(win) 쓰고 있었다. 그렇지 이 놈이 이겼지. 나는 아들의 사진과 글을 보면서 그 때를 생각한다. 그리고 훗날 우리 가족은 지금을 어떻게 기억할지 또 생각한다. 아들의 학교처럼 우리 집에 이어북이 있지는 않지만,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는 보이지 않는 이어북이 또 있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며 써가는 이어북이다.

2010-06-07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조금만 더 하자

직장을 다니던 중, 서른이 넘어서 유학을 온 나에게 대학원 수업을 따라 잡고 시험을 준비하여 치르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전공 서적을 읽으면서 한숨을 쉬다보면 창밖이 밝아졌고, 시험 전날은 두통약을 먹을 정도로 긴장을 하곤 했다. 당시 나의 목표는 남들보다 잘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조금만 더 하자’였다. 미국인 친구들 사이에서 유일한 외국인 학생이었던 내가 그들을 뛰어넘는 것은 사실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남들과 나를 비교하기보다는 나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노력을 더 하는데 애를 썼다. 미국의 문화와 사회를 몰랐던 나는 아무리 책을 읽고 신문을 보아도 내가 필요한 최선의 정보를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무언가를 내가 놓쳤을 수 있다는 생각이 늘 마음에 잠재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책을 보고 자료를 찾아보다 보면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되곤 했다. 그런데 하루 하루를 ‘조금만 더 하자’면서 공부했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대학원생 약 200명 가운데 해마다 한명을 선발하여 수여하는 특별한 장학금의 수혜자로 내가 선정되는 일이 벌어졌다. 학과 성적(GPA), 소논문(Paper), 봉사 활동의 기록을 종합하여 평가하는 선발 방식이었는데, 선정위원회의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선정 위원 전원이 일치된 의견으로 나를 뽑았다고 했다. 적지 않은 금액을 받게 된 나는 ‘조금만 더 하자’는 생각이 만들어낸 결과에 스스로 놀랐다. 외국인 학생이 그 장학금을 받은 일은 내가 처음이었다. 나는 조금만 더 하면 좋은 일이 일어남을 그렇게 또 경험했다. 조금만 더 하면 좋은 결과가 생긴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불변의 진리이다. 그 생각을 하고 그렇게 하면 누구나 발전할 수 있다. 특히 공부는 그렇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가까운 곳에 경쟁력이 월등한 비즈니스가 생기면 지장을 받는다. 반면, 공부는 언제나 결과를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려준다. 나는 아들이 도대체 그 생각을 왜 안하는지 알 수가 없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분명히 결과가 달라질텐데, 아들은 일상의 변화를 거부한다. ‘더’ 한다는 것은 변화인데, 변화를 거부한다. 자기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르면서, 정작 해야 할 일을 하는데는 시간을 쓰기 싫어 한다. 새벽이 되도록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면서도 시험을 위해서는 더 공부하지 않는다. 영화 음악을 대학에서 공부할 아들이 영화 보는 것을 막을 수없지만, 나는 아들이 자기 할 일, 즉 학과 성적의 향상을 위해서도 조금만 더 시간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들의 고교 시절 내내 했다. 아들은 시험 기간에도 긴장하는 것 같지 않았고, 꼼꼼한 계획을 세워 공부하기보다는 마음 내키는 대로 공부했다. 좋아하는 선생님의 과목 성적은 비교적 무난했지만, 선생님이 자기 마음에 안들거나 수업이 지루하면 스스로 공부를 게을리 해서 성적은 하강 곡선을 그렸다. 심한 경우에는 학기 중간에 과목을 그만 두기(Drop)도 했다. SAT를 준비하는 기간에도 긴장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으며, 시험을 위해 규칙적으로 하루 중 일정한 시간을 안배하는 일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었다. 그런 아들에게 조금만 더 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이독경(牛耳讀經)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들이 최소한의 자기 할 일들을 큰 탈 없이 하는 가운데 6월에 고교를 졸업하게 된 것은 순전히 초등학교 시절 몸에 밴 약간의 습관 덕이다. 숙제를 우선 한 후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논다는 생각마저 없었다면, 아들은 아마도 더 어려운 일을 겪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제 여름부터 대학을 가는 아들이 ‘조금만 더 하자’는 생각을 갑자기 할 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또 아들에게 말하고 싶다. “아들아, 조금만 더 하자.”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2010-05-31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선생님의 사과

“저는 제 아들을 잘 압니다. 제 아들은 자주 예의가 없으며, 남의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는 자기 생각을 여과없이 이야기해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말만 듣고 무조건 아들의 편만을 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이 눈을 크게 뜨고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이번 만은 다른 것 같습니다.” 아들의 카운슬러 선생님은 조용히 메모를 한다. “아들은 그 날 밤 잠을 못잘 정도로 괴로워했습니다.” 나는 건너 편의 두 분 선생님을 보면서 말했다. 두 분은 얼마 전 아들을 불러다가 두 분이 함께 아들을 훈계하는 과정에서 아들에게 심한 모욕을 주는 말씀을 하셨었다. 아들은 억울한 마음에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께 달려 갔다. 교장 선생님은 해당 교사 두 분과 자신 이외에 교감 선생님, 카운슬러 선생님 그리고 아들과 우리 부부를 불러 회의를 열었다. ‘君師父一體’의 문화를 아직 지니고 있는 나에게 아들의 선생님을 상대로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논리를 펴는 일은 여간 힘들지가 않다. 또 아들이 자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남의 탓을 먼저 하는 말썽꾸러기라서 늘 신중해야 한다. 문제는 아들이 선생님들의 지시를 권유 정도로 이해하고 자기 맘대로 해석하면서 따르지 않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선생님들은 아들에게 반드시 지킬 것을 기대했으나, 아들은 사안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선생님들은 권위를 찾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두 분의 선생님께서 아들을 불러다가 심하게 말씀하신 것은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회의를 주재하신 까닭도 여기 있었다. 나는 아들의 부족함을 우선 인정한 후, 선생님들의 수고와 교장 교감 선생님의 리더쉽, 또 카운슬러 선생님의 헌신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말씀도 경청했다. 선생님들은 아들의 무례함을 지적했으며, 아들이 자신들의 지도에 잘 따르지 않았음을 말했다. 그래서 자신들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들께서 사실을 인정한 순간, 솔직히 사과를 받고 싶었다. “아들은 아직 더 배워야 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지난 번 일에 관해서는, 선생님들께서 더 침착하시고 관대하셨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말썽꾸러기들은 늘 있는데, 선생님들께서 아이들과 맞서다가 지나친 말씀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들은 친한 선생님들과는 아주 친하고, 자기 주관에 의해 편치 않은 선생님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그 두 분의 선생님과는 최악의 관계였다. 그 날 선생님들은 사과하지 않았다. 그 동안 학생은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순종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는 나의 생각에 아들은 항상 반대해 왔다. 학생들에게도 의사를 표현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면서. 거침없이 할 말을 다하는 바람에 몇몇 선생님들과는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그 날의 회의에서 나는 선생님들의 시각도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또 학교 당국의 책임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조심히 살폈다. 그리고 그런 바탕 위에 아들을 위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찾으려 애썼다. 사실을 인정하는 선생님들로부터는 사과를 받고도 싶었다. 그러나 문제를 키우기 보다는 마무리하면서, 가장 좋은 길을 찾으려 했다. 그러다보니 회의는 긴장감 속에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다소 긴장이 풀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은 선생님들께서 분명한 사과를 해야 했다고 말했지만, 졸업을 한 달 앞 둔 시점까지 그런 문제로 아들의 학교에 가는 애비의 마음을 이 놈은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한숨을 쉬어야 했다. 한 주일이 지난 어제 아들이 말했다. 선생님들 중 한분이 사과를 했다고. 카운슬러 선생님도 계신 가운데서 아들에게 사과를 했단다. 아들은 자신의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받은 듯이 미소짓는데, 왜 내 마음은 편치 않을까?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10-05-24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마더스 데이' 카드

처음 유학을 와서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는 우리 명절이나 미국 명절 모두를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미국 명절은 마음에 닿지 않았고, 우리 명절은 쉴 수가 없어서 평일로 그냥 지나갔다. 인터넷으로 한국 땅의 명절 분위기가 전해져 와도, 명절 당일까지 학교 가서 수업하고 시험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크고 작은 ‘날’들은 그렇게 멀어져 갔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잊을 수 없는 날들이 가족의 생일과 결혼 기념일이었다. 그리고 ‘마더스 데이(Mother’s Day).‘ 한국에서는 어버이 날이라 했는데, 미국에 오니 어머니, 아버지 날이 각각이었다. 초등학생 아들은 매년 5월 마더스 데이가 오면 학교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왔다. 어린 것이 엄마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기특해서 아내는 마냥 기뻐했다. 학교에서 만들어서 가지고 온 것들은 손 바닥에 물감을 묻히고 종이에 찍어서 만든 판화부터 엄마에 대한 감사를 적은 시까지 다양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아들에게 한 가지를 더 주문했다. 우리말로 카드를 써서 엄마에 대한 감사를 표하도록 했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서울에서 마친 아들은 한글을 잊지 않고 잘 썼다. 집에서 늘 우리말로 대화를 하니 도움이 되었는지 몰라도, 아들은 꼭 한글로 카드를 써서 엄마 생일과 마더스 데이를 챙겼다. 그러던 아들이 지난 주 마더스 데이에는 영어로 카드를 썼다. 이제는 어린 아이도 아니고, 영어로 쓰고 싶다는 아들의 눈을 보니 말릴 수가 없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눈빛이었다. 자기가 모은 약간의 돈을 선물로 삼아 카드에 담은 아들이 아내에게 전했을 때 나는 아내의 눈이 잠시 촉촉해지는 것을 보았다. 아들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랑하는 엄마, 영어로 쓰니 훨씬 빨리 쓸 수 있고, 많은 말을 쓸 수 있어서 좋아요. 아마도 이 카드가 제가 집에서 엄마에게 드리는 마지막 마더스 데이 카드인 것 같네요. 이제 대학을 가서 집을 떠나 혼자 지내면, 저는 집이 얼마나 편했는지 알 것 같아요. 엄마가 얼마나 저를 위해 애쓰셨는지도요. 엄마, 감사합니다.” 늘 무슨 ’날‘이면,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써 온 아들이었지만, 이 날의 문장들은 아내의 마음에 더 큰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들은 이번 여름에 집을 떠나기 전, 한 달 정도를 혼자 지내는 예행연습(?)을 하겠다고 한다. 혼자 빨래하고, 자기 방 청소하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하는 연습을 해보겠단다. 그래야 멀리 가서도 잘 할 거란다. 나는 솔직히 아들이 혼자 얼마나 깨끗하게 하고 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빨래도 귀찮아서 제대로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다가 보니 엄마가 그 동안 자기를 위해 애쓴 것이 각별하게 느껴졌나 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카드에 담는데에는 영어가 더 편했을 것이다. 아들의 카드를 읽는 아내의 눈은 벌써 가을을 본다. 아들이 떠난 가을을. 수도 없이 말썽을 일으켜 속을 썪인 아들이지만, 떠나고 난 후에는 얼마나 그리울 것인가? 식사는 혼자서 거르지 않고 잘 먹을 것인가? 아프면 어떡하나. 아내는 아들의 작은 손짓도 유심히 본다. 그래, 이것이 정말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마더스 데이 구나. 아내는 잠시 숨을 멈추고 아들을 위해 기도한다. 마더스 데이 카드에 아들이 쓴 글이 이렇게 진하게 와닿았던 적도 없었다. 아들이 가는 길이 멀기 때문인지, 다들 가는 길을 가는 아들인데도, 아내는 맘이 편치 않다. 한 번도 가본 적없는 땅, 놀 거리와 유혹이 많은 대도시로 갈 아들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은 마더스 데이에 더욱 각별하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10-05-17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글리(Glee)

폭스(FOX-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글리(Glee)’를 보는 아들의 눈빛은 남다르다. 어릴 때부터 TV를 별로 보지 않고 자란 아들이 이 드라마 방영 시간에 맞추어 TV앞에 앉으면, 아내는 아무 말 않고 리모콘을 내어준다. 음악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유명한 히트곡들이 아름답게 합창으로 편곡되어 매회 방송된다. 드라마 속 맥킨리고등학교 스페인어 교사인 월 슈에스터는 학교의 글리클럽을 전국 대회에 내어보내는 꿈을 가지고 있다. 본인도 학생 시절 글리 클럽의 전신이었던 합창단에서 노래를 했던 탓에 그는 글리 클럽의 담당 교사로서 애착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한다. 이 드라마에 매회 나오는 음악들은 이 드라마를 위해 특별히 편곡되어 녹음되는데, 어떤 곡이 선택되어 불리어지는지가 시청자들과 방송가에서는 매주 화제다. 이 드라마가 시작될 때 아들이 각별한 관심을 보였던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어떻게 한국에서 그 옛날에 아빠는 글리 클럽을 하셨어요?” 아들은 내가 고교 시절 글리 클럽에서 노래한 것을 알고 있다. 나의 고교 시절은 글리를 빼고는 말 할 수 없다. 새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매사에 반항적이었던 나는 공부를 게을리해서 학교 성적이 바닥을 쳤었다. 자신감을 잃었고, 열등감이 생겨서 친구들을 편하게 만나기 힘들었다. 그러나 오디션을 거쳐 들어간 중창단에서 활동하는 동안 나는 자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선배들과 어울려 노래하면서, 교내외 행사의 여러 무대에 섰고, 조회 시간에는 전교생 앞에 나아가 애국가 지휘를 했다. 친구들은 내가 음악을 전공할 줄 알았을 정도로 음악에 푹 빠져 고교 시절을 보내었다. 나의 고교 10년 선배들이 시작하여, 해마다 신입생 중 네 명 만을 선발하여 학교의 음악 활동을 대표했던 그 중창단의 이름은 ‘경복글리’였다. 나에게 ‘글리’는 음악이었고, 친구들이었으며, 방황하던 시기에 나를 지켜 준 특별한 그 무엇이었다. 원래 글리는 18세기에 영국에서 유행한 무반주 남성 합창 형식을 일컫는 말이다. 미국의 유명 대학들이 글리 클럽을 가지고 있고, 한국의 대학 캠퍼스에서도 글리라는 이름이 종종 보인다. 그러나 그 때 서울에서는 우리가 글리라는 이름을 썼던 유일한 고교생들이었다. 어른들도 그렇지만 청소년들은 자신감을 잃기가 쉽다. 특히 그 시절에 해야 할 중요한 일인 학교 공부에서 일정 기간 만족할 성과를 못내면 다른 일에서도 자신감을 잃는다. 자신감을 잃은 학생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마음 속의 열등감을 키울 수 있다. 아들이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면서도 친구들을 모아 남성합창단을 만들었을 때, 나는 공부를 방해하는 또 하나의 장애물을 아들이 가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나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아들이 자신감을 되찾는 개기가 되기를 조용히 바랬다. 신기하게도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아들은 친구들과 모여 연습을 하고, 교내외 무대에 서면서, 음악을 즐길 뿐 아니라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도 인식하면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공부를 잘 하도록 자녀를 이끄는 것은 자녀에게 책만을 보도록 권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공부를 방해하고 시간을 뺏는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오히려 공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마음에 안정을 주고, 또래 집단 속에서 자신감을 회복하는 기회를 준다. 그림을 그리고, 운동을 하고, 노래를 하면서 자녀들은 친구들 속에 있다. 아들이나 딸로서의 위치가 아니라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는데에는 공부나 성적 이외의 것들이 영향을 끼친다. 관계 속에서 우선 자신감을 회복하면 공부도 잘 하게 된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글리를 지금 미국에서 보는 아들도, 고교 시절 서울에서 글리를 했던 나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10-05-10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공칠기삼(功七技三)

아들이 첫 SAT를 보기 전, 나는 아들이 조금은 긴장을 하면서 시험 공부를 하기를 기대했다. 그래도 대학 시험인데, 나는 아들이 얼마 동안 문제집을 들추며 심각하게 시간을 보내기를 원했다. 그러나 아들은 도무지 SAT공부를 하지 않았다. 문제집을 사주었으나, 대충 훑어보고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일상의 변화가 거의 안보였고, 심지어는 문제집 겉표지의 CD도 열어보지를 않았다. 학원이나 과외를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공부할 것을 강조해 온 나의 눈에는 그런 아들의 게으름과 시험에 관한 무관심이 대단히 우려스러워서, 마침내 시험 일주일 전에는 잔소리가 내 입에서 나왔다. “너, 그렇게 공부해서 필요한 점수가 나오겠니? 만일 이번에 2000점을 못 넘기면, 너는 무조건 아빠가 시키는대로 한국식으로(?) 공부해야 한다.” 나는 나직하지만 강한 어조로 아들에게 경고했다. 그리고는 아들과 함께 시간을 재어가면서 SAT문제를 푸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나는 새 책이나 다름없는 아들의 SAT문제집을 보며, 아들의 점수를 가늠해 보았다. 그렇게 준비를 게을리 해서는 아들은 2000점을 넘게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시험을 본 후, 점수가 나오던 날 아들이 말했다. “아빠, 좀 더 쓰시지 그랬어요?” 그렇게 공부를 안하고도 2000점은 넘겼다니. 나는 아들의 SAT 준비와 관련된 걱정을 일단 뒤로 하고, 아들에게 더 열심히 준비할 것을 주문했다. 한편으로는 아들에게 최소한의 내공이 쌓인 것을 확인한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너의 목표는 훨씬 더 높다. 얼마만큼 공부하면 어떤 점수가 나오는지를 알았으니, 더 달려들어라.” 중국 무술에서 ‘힘’이나 ‘에너지’를 뜻했던 ‘내공’이라는 단어가 요즘은 ‘내재해 있는 실력’이란 뜻으로 자주 쓰인다. 학생에게 내공이란, 오랜 기간의 꾸준한 학습을 통해 지니게 된 인지력, 창의력, 비판력 등을 바탕으로 축적한 지식과 그 사용 능력, 그리고 인문학적 소양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내공이 없는 시험 기술과 지름길 위주의 학습법은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보이지만, 결국에는 한계를 만난다. 자신의 내공을 대신하던 것들이 떠나면, 혼자 힘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다. 내공은 우수한 시험 점수와 학교 성적으로 드러날 수 있지만, 시험 점수가 좋고 학교 성적이 좋다고 모두 내공이 쌓인 학생들은 아니다. 그래서 대학들이 지원자들의 특별 활동 경력과 봉사 활동 기록을 본다. 남다른 환경에서 공부한 학생들을 눈여겨 본다. 역경을 만났다면 그것을 기회로 여겨야 한다. 내공을 쌓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수많은 학생들의 대학 중퇴는 내공의 차이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내공이 쌓여 있는 학생에게도 기술은 필요하다. 좀 더 효율적으로 시험을 치루는 기술은 쌓여있는 내공에 빛을 발하게 한다. 시험 경향을 파악하고, 빈출 문제 유형을 익히는 것은 대표적인 ‘기술’의 하나이다. 변화하는 입시 정보, 도움이 되는 각종 정보를 발 빠르게 수집하는 것도 기술에 속한다. 순발력 있게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도 분명히 중요하다. 지금 돌아보니, 아들은 오랜 독서와 몸에 밴 기본적인 학습 훈련 덕에 두번째 SAT에서 점수를 향상시켰지만, 공격적으로 시험에 초점을 맞추어 시험 기술을 익혔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 같다. 나는 한 학생에게 필요한 바탕의 내공과, 시험 기술 및 각종 입시 정보의 활용을 7대 3의 비율로 생각한다. 공칠기삼(功七 技三)이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10-05-03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좋은 학교가 주는 것

아들이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이 담긴 인사를 받았다. 시험을 통과하여 뽑힌 학생들이 모인 미국 최고의 공립학교를 다니는 아들을 둔 것이 얼마나 좋으냐는 것이었다. 적지 않은 분들은 자신들의 자녀도 지원을 했으나 입학을 못했다면서, 부러운 눈빛을 보이기도 했다. 아들은 아들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학교 생활을 했다. 과연 아들의 학교는 명문답게 학생들에게 긍지를 심어 주었다. 뽑힌 아이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곳은 학생들에게 이만 저만 공부를 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첫 학기부터 아들은 전에 경험하지 못한 많은 양의 공부를 하고도 저조한 성적을 받았다. 아들을 키워 오면서 단 한번도 고려한 적이 없었던 학원이나 과외에 대해서 심각한 고려를 했을 정도로 아들의 학교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좋지 않은 성적으로 인해, 아니면 더 좋은 성적을 위해 아들의 친구들 중 몇 명은 학교를 떠났다. 모두가 전에는 좋은 성적을 받았던 아이들이었다. 아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다가오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시간은 안개 속에서 좌표를 찾는 일이었다. 역설적으로 나는 아들이 과외나 학원에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 공부하여야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힘들수록 스스로 길을 찾아야 나중에도 대학에서 공부를 잘 할 것이라는 믿음을 나는 버리지 않았다. 성적은 당장 안올라도, 인내하면서 혼자서 공부하는 방법을 익히면 나중에도 득이 되리라 굳게 믿었다. 작은 성취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오직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고 했다. 성적이 목표가 아니라, 더 부지런할 것과 시간 관리에서 성공할 것을 요구했다. 나아가 아들이 여러가지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다시 오지 않을 고교 시절에 아들은 재즈 밴드와 연극, 합창, 뮤지컬에 학기마다 참여했고, 남자 아이들을 모아서는 남성 합창 팀을 조직하고 첫 해에 대회에 나가 입상을 했다. 한국 문화를 알리고자 만든 클럽에서는 한국전에 해병대 장교로 참전했던 미국인 할아버지를 모셔다 강연을 듣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 아들의 성적도 올라갔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소위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면 좋은 성적을 받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서 진학과 입시라는 관점에서 보면 학생간의 경쟁이 극심한 명문학교 진학은 오히려 손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아들을 보면서 나도 그런 생각을 한적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것 많은 요즘 세상에, 아들이 공부때문에 고민을 하고, 우수한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면서 노력했던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쉴 틈 없이 공부하고 각종 활동에 참여하면서 보낸 고교 시절을 아들은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순간의 유혹에 빠져서 돌아오기 힘든 길을 가는가? 눈에 보이는 규정만 지키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한 미국에서 청소년들을 끊임없이 유혹하는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또 일찍부터 자유를 강조하는 문화에서, 공부하라고 지겹게 말하는 교사들도 그리 많아보이지 않는다. 청소년들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빠른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이용하는 첨병이 되었지만, 그로 인한 문제와 피해를 고스란히 먼저 입는 취약한 계층이 되었다. 어른들은 기술을 개발하고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지만, 청소년들을 유혹들로부터 지켜주기에는 아직 힘에 부쳐 보인다. 공부를 강조하고, 학생들에게 공부와 관련된 부담을 많이 주는 학교는 당장은 학생들에게 힘들고 마음을 무겁게 할지 모르나, 잘 극복하면 결과적으로는 학생들에게 이로움을 준다. 자녀들에게 줄 것은 성적표와 졸업장이 아니라,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노력하는 습관이다. 이것이 좋은 학교에서 얻을 것이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10-04-26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꿈은 변한다

어려서 나는 의사가 되기를 원했다. 초등학교 때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로 인해, 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일을 나는 후에 하고 싶었다. 수학, 과학이 어려운 과목으로 등장한 중 고생 시절 나는 꿈을 바꾸었다. 수학 시간과 화학, 생물 시간이 어렵기만 했고, 아무리 애를 써도 다가갈 수 없는 꿈을 계속 가질 수는 없었다. 문 이과를 결정할 때, 선생님께서는 입시에서 유리하다면서 이과를 권했지만, 나는 문과를 고집했다. 국어, 국사, 사회, 독일어 등의 과목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나는 나의 길이 문과 쪽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재수할 때, 물리를 재미있게 가르쳐 주신 선생님 덕에 물리 한과목은 두 달 공부하고 만점을 받았지만, 나는 문과 성향이 틀림없었다. 대학에서 독일 문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맛보았다. 시선을 우리 문화와 우리 것에만 고정하지 않고, 밖으로 돌리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고, 사고하면서 글 쓰는 훈련을 한 탓에 나는 글 쓰는 일, 생각을 글로 옮기는 일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되었다. 다른 민족의 문화를 배우면서 다양성과 인류 공통의 보편성에 관해 눈을 뜬 시기였다. 후에 나는 미국에 와서 사회사업을 공부하고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사회복지사로서 다른 민족을 만나는 일을 하는 나는 부족한 점도 많지만, 이렇게 매주 칼럼을 쓴다. 나의 꿈은 몇 차례 변했다. 아들의 꿈도 변해왔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들이 써 놓은 공상과학 소설은 지금 보아도 미소를 짓게 한다. 영어를 막 익히던 아들은 우주를 개척하는 사람들과 우주에서의 전쟁에 관해 이야기하듯 써 놓고는 손님들에게 읽게 했다. 영화 스타 워즈(Star Wars)를 너무도 좋아한 아들은 영화의 등장 인물과 소품, 음악 등에 푹 빠져서 살았다. 그 후, 컴퓨터 온라인 게임을 즐기던 아들은 중학교 때 컴퓨터를 직접 조립했는데, 제법 컴퓨터와 관련 기술 분야의 발전에 흥미를 보여서, 과학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공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소질을 보일 줄 알았던 아들은 수학과 물리, 화학 등의 과목에서 고배를 마셨다. 대신 영어, 사회, 역사 과목 등에서 재미를 느꼈다. 이들 과목에서 아들은 대단한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좋은 성적을 받았다. 그리고 놀라웁게도, AP음악 이론 과목을 공부하는 동안 아들은 밤을 새워 작곡과 편곡을 하면서,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합창단을 조직했다. 적지 않은 곡을 직접 편곡해서 친구들과 노래했다. 아들이 편곡한 곡을 지역의 한 고등학교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기도 했다. 아들은 음악을 전공하겠다고 선언했다. 부모로서, 과학고등학교 학생인 아들이 나중에 음악을 공부하겠다고 할 때는 사실 그리 편치 않았다. 새벽에 아들의 방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종종 한숨을 쉬곤 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서 아들을 응원하기로 했다. 아들은 영화 음악과 게임 음악 분야에서 활동 중인 작곡가들과 연락을 하면서 자신의 음악을 평가 받고 지도받았다. 게임 음악과 영화 음악 콘서트에 즐겨 갔다. 스크린에 영상이 흐르면서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면, 아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선율을 따라했다. 이제 가을이 되면 아들은 대학에서 게임과 영화를 공부하면서 자기 꿈으로 한 발짝 다가간다. 나는 안다. 내가 그랬듯이 아들의 꿈도 바뀔 수 있다.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생겨서 아들의 길이 변할 수도 있다. 세상이 변하고 환경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아들이 기쁨을 주는 일, 자신과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하면 좋겠다. 세상의 변화를 잘 이해하고, 필요한 일을 하면서 인정받으면 좋겠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창조적이어야 하고, 기술을 전제로 한 새로운 모습의 인간 관계에서 지도자가 되기를 요청한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10-04-19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다시 말조심, 글조심

2004년 2월 하버드대 학생들이었던 창업자 네 명에 의해 하버드 기숙사로부터 세상에 나온 facebook.com은 현재 4억명의 사용자(Active User)를 자랑한다. 종업원 수 1200명의 이 기업은 오직 사용자가 원하는 사람들만을 상대로 정보를 공유하고 친분 관계를 유지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매일 2억명 이상이 찾는 이 서비스의 사용자들은 평균 130명의 친구를 facebook.com에 가지고 있다. 또 매일 평균 55분 이상을 이 서비스에서 쓰는데, 1억명 이상은 휴대폰으로도 이 서비스를 사용한다. 가히 온라인 시대의 정보교류와 사회 활동의 장소라 하겠다. 갑자기 facebook.com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 아들은 교감 선생님께 또 한 번 불려 가야 했다. 교감 선생님의 손에는 아들이 facebook.com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남긴 말들 중에, 한 선생님과의 갈등을 이유로 푸념하고, 속상해서 남긴 글들이 프린트되어 들려 있었다. 그 선생님과의 갈등이 아들의 학교 생활을 무척 힘들게 하던 때여서, 아들은 선생님의 수업 방식과 지도력에 대한 원망을 facebook.com에 종종 썼었다. 학교에서는 할 수 없는 선생님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과 거센 비판이 아들의 손에 의해 기록되었다. 그런데 그 내용들이 고스란히 교감 선생님의 손에 있었다. 누군가 전달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욕설이 담긴 이메일을 친구들에게 보내었다가 곤욕을 치렀는데, 아들은 또 한 번 위기를 맞았다. 아들은 Facebook.com에서 친구로 지내는 사람들과는 어떤 이야기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에게만 연결을 허락하여 서로의 글을 읽고 사진을 보는 권한을 공유하는 이 서비스에서 아들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쓰고 싶은 대로 썼다. 그들이 친구이기 때문이었고, 마음을 나누는 각별한 관계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은 자신의 믿음이 참으로 순진하기만 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군지 알아 보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실망한 아들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과연 ‘친구’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누군가가 꼭 자신의 잘못을 들추어 번번이 문제를 제기하니, 아들은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하면서도 주변을 원망하는 눈빛이 가득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들은 그 선생님의 이름만은 직접 거론하지 않았으며, 교감 선생님 또한 이번에는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쪽이었다. 교감 선생님은 아들에게 “그렇게 힘들었으면, 차라리 나에게 오지 그랬냐”면서 아들을 위로하고 가벼운 경고로 이번 일을 마무리했다. 아들은 이 이야기를 나에게 하면서 멀리 하늘을 보는데, 그 눈에 실망이 가득했다. 아무도 못 믿겠다는 표정 속에 가까운 곳의 친구가 그렇게 했다는 데 대한 배신감이 보이기도 했다. 이미 이메일 사건으로 마음 고생을 한 아들에게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안했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는 아들의 눈으로부터 이미 나는 아들이 교훈을 얻었음을 알 수 있었다. 미국이 그런 것인지, 세상이 변해 가는 것인지, 아니면 인터넷 세대의 아이들이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지간한 잘못은 덮어주고, 남의 문제를 고해 바치는 일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문화에서 자란 나에게, 아들의 이번 일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말과 글을 우선 신중히 해야하며, 기록이 남는 온라인 매체를 이용하면서는 반드시 타인들이 보아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한다. 수년 전 남긴 글로 인해 가수 생활을 접은 연예인이 있었다. 이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누가 아는가? 우리 아이들이 깊은 생각없이 쓴 글로 인해, 생각하지도 않은 순간에 어려움을 겪을지. 아들이 겪은 일이 좋은 교훈이 되어서 같은 일이 다시 없기를 바랄 뿐이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10-04-12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너 좋으면 된다

지난 두 주 동안, 아들은 자신의 대학 입학 지원 결과를 기다리면서 하루 하루를 보내었다. 학교에서 오면 우편함을 열어서 대학교로부터 자신에게 온 것이 있는지를 우선 살폈다. 대학에서 지원자에게 보내는 결과물은 봉투만 보아도 내용을 알 수 있다. 작은 봉투가 오면 불합격이다. 한 장의 편지지에 불합격을 알림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써 있다. 대학 측은 편지를 대단히 부드럽고 완곡하게 쓰지만 결론은 불합격이다. 큰 봉투가 오면 합격이다. 대학은 합격을 알려서 기쁘다면서, 학교 안내 책자와 다른 참고 자료들을 같이 보낸다. 편지지만이 아니라 합격증(Certificate)을 근사하게 만들어서 보내는 학교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방법이 추가되어서 인터넷으로 합격 여부를 알아 볼 수도 있다. 지원 학교 웹 사이트에서 등록 번호와 비밀 번호를 입력하면 합격 여부를 알아볼 수 있다. 대학이 정한 발표 날, 지원자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을 것이다. 지난 두 주 동안 나는 아들에게 계속 같은 말만을 했다. 작은 봉투를 받아들고 시무룩해 할 때에도, 큰 봉투를 열며 웃을 때에도 나는 아들에게 일희 일비(一喜一悲)하지 말라고만 했다. 우리의 삶이 힘든 일도 만나고, 기쁜 일도 만나는데, 그 때마다 지나치게 힘들어 하거나 기뻐할 것은 아니라고 했다. 끝까지 결과를 기다리며, 지금 할 일을 잘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어떤 날은 작은 봉투와 큰 봉투가 함께 온 날도 있다. 아들은 그 사이 희비에 관해 거리를 조금씩 두는 것 같았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연일 친구들이 어느 학교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았다고 알려왔다. 그 학교는 어느 전공에서 순위가 어떻고, 합격률이 몇 프로였다는 둥, 자세한 소식이 오고 갔다. 아들은 그런 소식을 들으면서 하루 하루 기다렸다. 자랑하는 친구들을 축하하면서, 가고 싶은 학교에 못 간 친구를 위로하면서 하루 하루가 갔다. 영화 음악을 공부하겠다는 아들은 오래 전부터 자신이 가고 싶은 학교를 알아보았다. 각 학교의 교과 과정과 평판 등 여러가지를 살핀 후, 지난 12월에 영화 및 영상 분야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학교에 지원했다. 아들의 생각은 음악만을 전공하기보다는, 영화와 게임 제작을 전공하면서 그 안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것이 장래에 더 유익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음악 전공이 아닌 영화 예술 전공으로 지원을 했다. 요즘의 영화 예술은 기술적으로 대단히 빠른 진보를 해서3D 영화등이 게임 산업과 발을 맞추어 발전하고 있다고 아들은 내게 설명했다. 그래서 영화 음악의 범위도 그에 따라 넓어지고 있다고 했다. 컴퓨터와 영화와 음악이라는 단어가 아들의 눈 속에 보였다. 나는 아들이 일찍부터 자기 생각을 정하고 나름대로 애를 써 온 것을 알았지만, 전통적으로 인정받는 학교에도 합격하기를 바래서, 몇군데 더 지원을 하게 했었다. 입학만 하면 재정 지원이 많은 학교들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아들 편이었다. 아니, 아들이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이 옳겠다. 또 다른 편으로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필요한 것만을 정확히 해서 그 이상이나 다른 것들을 요구하는 곳으로부터는 인정을 받지 못한 것도 같다. 아무튼 그 전부터 아들이 가기를 원하던 학교로부터 큰 봉투가 배달되었다. 그런데 원하던 학교에서 자기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기뻐하는 아들을 보면서, 분명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이유가 무얼까? 나의 머리 속에 있는 세계와 아들의 미래 세계가 달라서 그런 걸까. 아들이 자기 원하는 길을 가면서 부모의 마음은 알아주지 않으니 그런걸까. 아니면 이제 곧 우리를 떠날 아들을 생각하는 걸까. 아무렴 어떤가. 너 좋으면 된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10-04-05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앞 자리만 좋은가?

고교 시절, 세종문화회관 뒤 분수대 광장에서 그 날 저녁 공연의 출연자들이 저녁 식사를 하러 나오기를 기다린 적이 많았다. 비싼 공연을 볼 형편이 아니었던 나는 출연자들에게 가서 꾸뻑 인사를 하고, 공연을 꼭 보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대부분의 출연자들과 공연 제작진들은 자신들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을 떼어 어린 나에게 주었다. 그것은 출연자와 제작진의 비표로서, 무대뒤를 들어 갈 수 있는 일종의 출입증이었다. 나는 그것을 달고 기다렸다가 식사를 마친 그들이 오면 함께 무대 뒤로 들어 갈 수 있었다. 그럼 나는 즉시 객석으로 가서 공연 시작 때까지 비어 있는 자리들을 지켜보다가 끝내 주인이 없는 자리에 가서 공연을 보았는데, 비싼 공연일수록, 맨 앞자리의 초대석들은 비어있는 자리들이 많았다. 고교 시절 나는 자주 오페라와 연주회를 그렇게 무료로 보았다. 그런데 맨 앞자리가 공연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장 피에르 랑팔이 침 튀기며 연주하는 것까지도 보였지만, 감상을 하기에는 그리 좋은 자리가 아니었다. 조금 더 뒤로 가면 더 좋은 자리가 있었다. 얼마 전, 한 어머니께서 이메일을 하셔서 고교생인 딸이 학교 연극 활동에 신경을 너무 많이 쓴다고 걱정을 하셨다. 그 딸은 공부를 곧잘 하는데, 연극을 좋아해서 학교에서 자꾸 늦게 온다면서 안타까워 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실제로 속상하신 것은 딸이 연극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딸은 무대 소품 담당이었다. 연기를 하는 학생들이 쓸 여러가지 물건들을 제작하고, 옷을 디자인하는 일을 그 딸은 너무 사랑했다. 식용 염료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만들고 무대 세트를 그리는 일을 하는 딸을 어머니는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도대체 주연으로 연기를 하지 않을 바에는 아무도 몰라 줄 일을 왜 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 어머니의 이메일에 답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아이들이 주연을 하려 하면, 행인1과 마을 사람 2는 누가하며, 뮤지컬에서도 모두가 주연만 하려 하면 코러스는 할 사람이 없어서 공연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썼다. 나아가 소품을 담당하고, 음악과 조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공연을 할 수 없으니, 딸의 역할은 정말 좋은 역할이면서 중요하다고 알려드렸다. 딸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이 정말 연극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딸이 그처럼 중요한 일을 하면서 즐거워하니 공부를 놓지 않는다면 장려해도 좋겠다고 덧붙였다. 전에 아들이 뮤지컬을 하고 연극을 할 때, 아들은 주연이 아닌 조연이나 단역을 맡아서 했다. 뮤지컬에서는 코러스였다. 이왕이면 더 앞에서 연기하고 노래하면 좋았겠지만, 나는 아들이 그렇게 무대 위 뒤편에서 하는 연기와 노래도 의미있게 보았다. 아들은 친구들과 그 무대를 만들고, 많은 일을 함께 하면서 연기와 음악 이상의 것들을 얻었다.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은 부분을 각각 맡아서 하는 일은 하나같이 모두 소중했다. 공연이 끝나고 난 후, 너나 할 것 없이 어깨를 함께 하고, 공연의 마침을 축하하던 아이들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출연했던 아이들은 조명, 음향, 소품 등을 맡은 친구들을 모두 불러내어 감사를 표하고 박수를 보냈다. 자녀들을 모든 일에서 앞에만 서게 하는 것은 과연 좋은 것인가. 작아 보이지만 중요한 일은 해도 표시가 안나니 아예 말려야 하는 것인가. 모두가 다 투수를 하려 하면 야구 팀은 어떻게 시합을 할까. 쿼터백 자리가 아니면 안하겠다는 아이들을 모아서 어떻게 풋볼을 할 것인가. 맨 앞 자리만이 반드시 좋은 자리는 아니다. 중요한 자리는 더 있다. 공연장에서도, 경기장에서도, 그리고 인생에서도.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10-03-29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교육은 원래 자유롭지 않다

수직적인 인간 관계를 싫어하고 수평적인 인간 관계를 좋아하지만, 교육에서는 수직적인 관계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마음은 수평적이되 방법은 권위를 가지고 때때로 수직적이어야 한다. 권위를 잃어버린 교사와 부모의 말을 학생과 자녀들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수평적으로 사고하면서 모두가 같다고만 생각하다가는 가르침도 책임도 없는 헛점 투성이 교육이 될 수 있다. 아직 분별력이 없는 어린 아이들에게 자유를 어디까지 주어야 하는가는 늘 쉽지 않은 질문이다. 인간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만 가르치다가는 중요한 것을 잃을 수 있다. 질서 정연하고 이성적인 분위기의 미국 사회에서 자란 대학생들이 공부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일이 있다는 뉴스를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다. 명문대학의 똑똑한 학생들이 자신의 목숨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여긴 것은 아니었는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아이비 리그 대학 중 캠퍼스 내의 다리에서 학생들이 투신하는 일이 발생하자 한 학교는 그 다리에 경비원을 배치했다. 학생들의 자살은 누구의 책임인가? 기사를 읽는 내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우면 그랬을까하는 속상함과 함께 안타까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의 대학생들이 공부의 부담으로 자살하는 일이 드문 사실은 한국의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공부에 대한 부담을 덜 주는 탓보다는 아무리 힘들어도 목숨을 버려서는 안되며, 자신의 가족과 자신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는 공동체 의식이 강한 탓은 아닐까? 분별력이 없는 어린 학생들에게 스스로의 판단에 입각해서 결정하고, 타인에게 해를 안끼치면 자유롭게 모든 것을 하게 하는 교육으로는 몇가지가 부족할 수 있다. 왜 하는지도 모르고 했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의 지시에 따랐더니 두고두고 좋은 것을 익힌 것이 얼마나 많은가? 교육은 어느 정도의 강제가 필요하고, 개인과 사회에 유익한 가치를 심어주기 위해 어린 학생들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동안 지켜 본 미국 사회의 많은 청소년들은 더 열심히 공부하자고 해도 표준적인 시간 외에는 더 하려 하지 않고, 중요한 목표를 위해 다른 것들을 희생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붙들고 즐기려한다. 그러다 보니 자유롭고 창의적이기는 하나, 다수의 청소년들은 목표를 지향하고 인내하면서 자신의 일부를 희생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 아니, 그런 것을 알지도 못한다. 교사들은 정해진 규정에 따라 일 할뿐 ‘스승’이 되려 하지 않는다. 공부하지 않는 학생, 문제를 일으킨 학생을 두고, 잘 못 가르친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는 교사는 거의 없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사들은 학생보다는 규정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그것은 오랜 교육 현장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겠지만, 학생과의 깊은 교감을 하려하는 교사는 드물다. 따라서 학생들도 평균적으로 사고하면서 규정을 지키면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기가 쉽다. 교육은 원래 자유롭지 않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하기 싫은 것은 다 안하면서 바른 삶을 사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없다. 미국의 소위 상류 사회 가정들이 엄격한 교육법을 지키며, 명문 사립 학교들도 역시 엄격한 통제를 교육의 방법으로 채택한 것을 보면, 우리 부모들이 무엇에 더 신경을 써야 할지 알 수 있다. 세상의 많은 것들처럼, 미국 학교와 사회의 교육 시스템도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법과 질서를 강조하니, 표면적으로는 문제들을 막아내고 있지만, 인간적인 교류나 구성원의 일체감은 제한적이어서, 허용된 자유를 자칫 잘못 사용할 수가 있다. 자유도 좋고, 창의력도 좋지만, 해서는 안될 일이 있다.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10-03-22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얼마나 세심한가?

해군의 항공모함에서도, 공군의 전투 비행단 활주로에서도 아침이면 군인들이 하는 일이 있다. FOD(Foreign Object Debris, 항공기 외부로부터 항공기에 손상을 줄 수 있는 작은 이물질 )를 제거하는 일이다. 나란히 횡으로 줄을 서서 걸으면서 활주로에 혹시 있는 이물질을 찾는다. 활주로에 떨어진 작은 나사 하나가 전투기 엔진에 빨려들어가면 고가의 전투기를 고장나게 만들기 때문에 매일 아침 군인들은 활주로의 이물질을 살피고 제거한다. 아무리 전투력이 좋은 전투기라도, 아무리 급한 상황에서라도 작은 이물질 한 개는 전투기를 고장나게 하고, 작전을 실패하게 한다. 나는 아주 작아보이는 일이 큰 일을 성공시키기도 하고 실패하게 하기도 하는 예로 이 이야기를 아들에게 자주 한다. “너는 그렇게 정리 정돈을 안해서 어떡하니?” “아빠, 책상 위가 좀 어지럽혀져도 큰 일 없어요.” 아들의 방을 보면 한 숨이 나온다. 보던 책을 침대 옆이나 책상 위에 그대로 놓아둔 채 정리를 하지 않는다. 많은 서류들이 섞여 있다. 언젠가부터는 아들의 물건이라도 함부로 손댈 수 없어서 그냥 보고만 있는데, 아들은 좀처럼 정리를 하지 않는다. 시간이 없어서도, 할 줄을 몰라서도 안하는 것이 아니다. 아들에게는 정리 정돈이 별 일이 아니고, 시간을 들일만한 가치가 없다. 정돈은 아주 작은 일이다. 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바쁜 순간에 필요한 것을 찾느라 아들은 야단 법석을 피운다. 중학교 때부터 아들이 신문의 사설을 읽도록 권했던 아내는 늘 사설 부분을 오려내서 아들에게 주었다. 아들이 시사 문제에 대해 깊은 이해를 못하더라도 매일 읽혔는데, 아들의 고교 입시와 작문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다가 신문을 통째로 읽게된 아들을 보면서 기뻐했는데, 아들이 다시 ‘바빠져서’ 신문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신문 좀 읽으라고 잔소리를 하기 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식탁 위의 신문을 간식을 먹으면서 읽는 아들을 보고는 아예 신문을 식탁 위에 항상 올려 놓았다. 아들은 간식을 먹을 때 늘 신문을 보게 되었다. 서울에 갔을 때, 한 일간지가 자신의 학교를 보도한 것을 알게 된 아들은 바쁜 일정 중에도 지하철과 거리의 판매대에서 그 신문을 구했다. 교장 선생님의 사진이 실린 그 기사는 전면 특집이었다. 아들은 자신의 대학 지원을 위해 추천서를 써주신 교장 선생님께 감사를 표하고자 그 신문을 애써 구했다. 제자가 서울로부터 학교와 자신이 보도된 1월 1일자 신문을 사오자 교장 선생님께서 기뻐했음은 물론이다. 교장 선생님은 아들의 부족함에도 아들을 늘 사랑하시고 도와주신다.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매일 학교에서 집에 오면 반드시 숙제부터 먼저 하도록 습관을 들였던 아들은 나중에도 그 습관 덕분에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자신의 할 일을 우선 하는 책임감도 키우게 되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던 그 습관이 아들의 갈 길을 인도했다면 과장일까? 섬세함은 작은 일을 무시하지 않고 보는 관찰력과 그 작은 일이 후에 끼칠 영향을 상상하는 능력과 연결된다. 작은 일은 큰 일을 이루는 시작이다. 작은 일을 못하면서 큰 일을 할 수는 없다. 작은 실수와 잘못 하나가 큰 일을 망치고 실패로 이끈다. 주위를 정돈하고, 옷을 단정하게 입는 일, 시간을 지키는 일, 작은 일도 꼼꼼하게 하는 습관, 고마움을 표시하는 일은 작지만 작은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을 잘 하고도 한 가지가 결여되어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작은 일 한 가지 때문에 생각지도 않았던 성공을 이루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아들에게 작은 일을 잘 하는 섬세함을 강조하는 요즘이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10-03-15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아들아, 말조심, 글조심 해라

한참 일하다 아들의 학교 선생님이나 카운슬러 선생님으로부터 이메일이 오면 잠시 가슴이 뛴다. 학과 성적이 올 때는 비슷한 시기에 각 과목 선생님들로부터 성적이 오기 때문에 덜 신경이 쓰이지만, 성적이 올 때가 아닌데 오는 이메일은 더 신경이 쓰인다. 모든 학부모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이 아니라, 나에게만 보내는 이메일은 대개 카운슬러 선생님으로부터 온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들의 문제로 회의를 해야하니 학교로 나와달라는 이메일을 나는 매 학기마다 한 두 차례는 받았다. 그 결과 카운슬러 선생님과는 오래 전부터 친한 사이가 되었고, 교감 선생님도 자주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좋지 않은 일로 만나는 선생님들이 반가울 리 없고, 늘 아들이 무언가 잘못을 한 후라서 나의 발걸음은 무겁기만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일로 아들의 학교에 가는 일이 정말 싫다. 지난 주에 아들은 또 한번 사고를 냈다. 카운슬러 선생님의 이메일을 여는데, ‘이번에는 또 뭘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미리 한숨이 나왔다. 아들은 처음에 공부를 썩 열심히 안해서 학교로부터 경고를 받은 일을 시작으로 수강 과목을 학기 중에 중단(drop)한 일을 포함해서 자주 나를 학교로 오게 했다. 한 번은 학교 복도에서 혼자 말로 어느 선생님을 비난했다가, 우연히 그것을 들은 학부모의 고발(?)로 곤욕을 치렀다. 교감 선생님을 포함해 세명의 선생님을 만나 아들의 명백한 잘못을 인정하고 선처를 부탁한 후 학교를 나올 때는, 깊은 한숨을 쉬어야 했다. 공부를 열심히 안하는 것과 별개로, 아들의 조심성 없는 언행이 만드는 결과는 그 상처를 오래 남겼다. 아들이 비난했던 그 선생님과 관계가 극도로 나빠졌음은 물론이다. 아들은 지난 토요일에 개최되었던 교외 아카펠라 경연대회에 친구들과 출전하기로 하고 준비를 해왔었다. 학교 안에서 남성 합창으로 나름대로 인정을 받아 온 아이들이 대회를 앞두고 마지막에는 매일 모여 연습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대회에 참가하기로 하고, 연습에도 나오기로 약속한 친구들이 계획처럼 잘 모이지를 않자, 리더인 아들은 속이 상해서 그만 화가 잔뜩 섞인 이메일을 친구들에게 보내었다. 대회는 다가오고 연습은 안되니 아들은 어지간히 속이 상하고 화가 났었는지, 써서는 안될 말들을 이메일에 담았다. 입에 담지못할 욕설도 써가면서 보낸 아들의 이메일을 친구 중 한명이 음악 선생님께 보내었고, 음악 선생님은 교감선생님께 보고를 했다. 내가 요청하자 카운슬러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아들의 이메일을 보면서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나도 자랄 때 친구들 간에 욕을 했고, 군대에서도 욕을 하고 듣고 했던 터이지만, 글로써 욕을 써서 고스란히 남들이 보게 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아들이 아카펠라 경연대회 준비에만 신경이 쓰여 신중함을 잃어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속이 상한 나머지 앞 뒤 생각하지 않고 보낸 이메일때문에 친구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나는 또 한 번 죄인의 심정으로 카운슬러 선생님과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아들은 그토록 신경써 준비했던 아카펠라 경연대회에 못나갔다. 리더이지만 마지막 수일 동안 연습에도 참가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음악 선생님은 함께 모여 노래하는 아이들을 각각 불러 아들의 평소 언행에 관해 조사했다. 교감 선생님은 아들을 불러서 전후 상황을 듣고 “오죽 답답하면 그랬겠니?” 라고 이해를 보이면서도 아들의 경솔함을 꾸짖었다. 나는 바쁜 가운데 카운슬러 선생님과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아들이 좀더 신중했다면 안겪어도 될 일을 겪는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마음을 다스리느라 애를 써야 했다. 도대체 이게 무언가. 철없는 아들은 연습 금지 이틀이 지나자, 징계는 충분하다면서 자신의 경솔했던 행동도 따지고 보면 약속을 이행하고 연습을 잘 해서 모두가 좋은 결과를 내고자 했음에 다름없다는 논리를 펴기 시작했다. 그 정도는 평소에 친구들 사이에 자주 하는 말 들인데, 그것을 문제 삼은 친구가 오히려 문제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도 했다. 아들은 그 동안 준비한 아카펠라 경연대회에 못 나가면 큰 일이 날 것처럼 속상해했다. 나는 무조건 참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학교가 어떤 식으로든지 이 일을 정리해야 하는데, 연습 참가 금지 정도로 마무리 한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규정 준수를 최고로 여기는 미국의 학교에서 엄연히 중대한 잘못을 한 아들이기에, 나는 더욱 아들에게 가만히 있을 것을 요구했다. 이제 학교가 어떤 식으로든지 이번 문제를 처리할텐데, 또 한번 학교에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는 중에 다행스런 것은, 비록 거절되었지만, 함께 노래하는 아들의 친구들이 지난 주에 학교 당국에 아들이 경연대회에 나가도록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었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아들이 그래도 평소에는 다수의 친구들과 무난하게 지내고 리더로서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들아 제발 말조심, 글조심해라.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10-03-08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판정에는 무조건 따른다

미국에 온 이후로 만난 사람들 중에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동성씨가 있다. 몇 번 만나면서 얼굴을 익힌 후로는 미국의 오노 선수와 경기할 때의 이야기를 물어 보고 싶었는데, 물어볼 수 없었다. 그리 편치 않은 기억을 다시 이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후배들을 지도하는 지도자가 되어 있다. 언젠가는 한 번 물어보아야지. 동계올림픽 경기 가운데에서 가장 판정의 논란이 많은 종목인 쇼트 트랙은 그 때나 지금이나 판정을 놓고 말이 많다. “아빠, 그래도 한번 심판이 결정하면 끝이에요.” “고의도 아니고, 심하게 닿지도 않았는데, 저건 완전히 잘 못 판정했어.” 뱅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팀이 중국 팀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쇼트트랙 경기에서 1위를 놓치고 실격되자 나는 안타까워서 중얼거리는데, 아들은 담담하게 중계를 본다. 같은 한국인이지만, 미국서 자란 네가 아빠 맘을 알겠냐. 나는 아들이 얄밉다. 아들의 그런 반응이 한국인으로서 느껴야 할 보통의 반응이 아닌 것 같아 영 맘이 편치 않다. 어쩜 그렇게 결과를 빨리 받아들이고 냉정하게 생각하는지. 아들은 스포츠 경기를 보다가 심판의 판정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가 나보다 조금 더 편해 보인다. 나도 심판의 판정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들의 정도가 더 강하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심판이 잘못 판정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심판이 못 보게 반칙을 하는 것도 일종의 기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사실 심판도 사람인지라, 최선을 다해 경기를 진행하고 양심에 입각해 판정을 해도 의도와 달리 실수는 나오게 되어 있다. 가을 내내 주말마다 나를 흥분시키는 대학 풋볼 경기에서 심판의 오심으로 터치다운이 아닌 것이 터치다운이 되고, 반칙이 아닌 플레이를 반칙으로 보아서 경기의 승패가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 방송은 계속 느린 동작으로 여러 각도에서 잡은 화면을 보여주는데, 그 한번의 오심으로 경기 결과가 뒤집혀서 지는 팀은 억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미국인들은 경기 중 한 번 내려진 판정은 비록 그것이 오심이라도 번복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제소를 하면서 강하게 따지거나 항의를 하는 일이 많지 않다. 대신 오심이 판명되면, 심판들의 관리 체제로부터 심판에게 징계가 따른다. 오심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 팀의 감정과는 전혀 상관없이, 심판들이 모여 미숙한 심판을 징계하고 교육한다. 그래서 오심이 있을 경우, 미국인들은 오심으로 인해 반사 이익을 챙긴 팀보다는 그 경기의 심판을 비난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이렇게 판정에 승복하는 문화가 빛을 발하는 분야가 미국의 정치 분야이다. 선거와 표결에서 결과가 나오면 두말없이 패배를 인정하고 결과를 받아들인다. 작년에 우리 지역 공직자 선거에서 단 89표 차이로 낙선한 정치인은 개표 후 재검표를 요구하지 않고, 상대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며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 정도 차이라면 재검표를 할 만도 한데, 그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패자도 멋지고, 패배도 머지않아 승리를 만들 수 있음을 나는 보았다. 우리 한국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상상력이 다른 민족보다 풍부하다. 그래서 매사에 보이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기보다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근소한 차이의 결과나 석연치 않은 판정이 내려진 경기에서는 더욱 그렇다. 쉽게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울한 마음에 상대 팀을 오래도록 미워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그런 오기와 끈기가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큰 틀에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또 자신의 재기를 위해서 편치 않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즉시 결과를 받아들이는 자세는 아직 부족함을 나부터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속상함이 없이 패배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석연치 않은 판정을 유쾌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어디 있을까? 미국인들도 심정은 다 같되, 다만 그들은 우리보다 빨리 속상함을 감추고 승자를 인정하는 냉정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희로애락을 느끼고 겉으로 표현하는 두 문화 사이의 정도 차이라면 과장일까? 근소한 차이로 지난해 우리 지역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그 날 밤 깨끗이 결과를 받아들였던 정치인이 한인인 점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본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10-03-01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폭설

공군 병장 시절, 눈이 하루를 넘도록 내린 적이 있었다. 비행단의 모든 장병들이 쉬지 않고 눈을 치우다가 하루 해가 저물었다. 밤에도 계속 내리는 눈을 치우는 일은 말 그대로 작전이었다. 활주로의 눈은 제설 장비를 가진 차들이 치웠지만, 비행대대 근처와 격납고로부터 활주로까지의 넓은 길은 장병들이 직접 제설 작업을 해야 했다. 한 팀이 너까래를 사용해서 눈을 밀면, 다른 팀은 빗자루를 가지고 싹싹 쓸었다. 눈이 그치면 즉시 언제라도 전투기가 발진할 수 있도록 눈이 오는 중에도 계속 치워야 했다. 영하의 날씨에 칼바람이 부는 비행장이었지만, 온몸이 땀에 젖고, 머리에서 김이 모락 모락 피어올랐다. 나는 눈에 대한 아름답고 낭만적인 상상을 그 때 눈을 쓸면서 함께 쓸어 버렸다. 그 때부터 눈은 더 이상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라 고통스런 일거리였으며, 차가운 겨울을 의미했다. 한국을 떠나 유학 올 때, 나는 추운 겨울이 없는 미국 남부의 학교로 왔다. 겨울에도 반팔 옷을 입고 사는 남부 도시에 눈이 오던 날, 방송에서는 수십 년만에 내린 눈이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것은 ‘호들갑’이었다. 새벽에 잠깐 기온이 영하를 기록하면서 내린 눈의 양은 1센티미터 정도였는데, 도시의 모든 학교와 관공서가 문을 닫았다. 아니, 고작 그 정도 눈에 도시가 모두 멈추다니. 나는 놀랍고도 웃음이 나왔다. 만일 눈이 5센티미터만 오면 난리가 나겠구나. 나는 미국인들이 약간의 기상 변화에도 지나치게 반응을 하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워낙 눈이 없는 도시에서는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서 그렇게 조치를 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늘 따뜻한 남부 도시에 제설 장비가 없으며, 제설 예산도 없기 때문에 휴업이 최선의 대책이라는 것이다. 눈이 오는 날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막는 확실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아이들이 눈오는 날을 좋아하고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당연하다. 예측하지 않은 기상이변으로 인해 눈이 올 때 이미 등교한 아이들이 오전 수업만 하는 경우도 있고,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하다가 눈이 오자 스쿨버스가 아이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다 주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 ‘내일 눈이 온다’는 말은 ‘내일 학교에 안간다’는 말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주 버지니아에 내린 눈은 ‘폭설’이라는 말이 정말 어울릴 정도였다. 이틀 내내 내린 눈이 세워놓은 차들을 완전히 감추어버린 것을 보고는 놀라움을 넘어서 걱정이 되었다. 차 위에 쌓인 눈이 차를 누르는 무게가 상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어서 저온으로 눈이 얼어버리면 그 눈을 치워내는 것도 힘들 것 같아 아들과 같이 삽과 비를 들고 나갔다. “아빠, 이거 완전히 차를 눈 속에서 꺼내는 일이네요.” “살다가 이렇게 큰 눈은 처음이다, 정말.” 우리집 차 두 대는 눈에 감추어져서 마치 옛 왕릉처럼 곡선을 만들고 있었다. 제설 차량이 한 번 정도 길의 눈은 치웠지만, 차 주위는 눈이 고스란히 쌓여서 허벅지까지 눈에 잠겼다.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무들은 완전히 각도를 꺾고 옆으로 누워 있었고, 어디가 길이고 길이 아닌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삽질은 전신 운동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면서 아들과 눈을 치우는데, 옆 집에 혼자 사는 아주머니가 자기 차도 눈 속으로부터 꺼내달란다. 자기는 의사로부터 무리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아서 아무 것도 못한단다. 아들은 나보고 답을 하라는 표정인데, 우리 것도 힘든데 언제 그 집 것을 또 하느냐는 눈치다. 내가 우리 차들의 눈을 우선 치우고 난 후 도와주겠다고 웃으면서 말하자 아들은 답답하다는 얼굴이다. 그러더니 화장실을 가겠다고 집에 가서는 나오지를 않는다. 눈 속에 제발로 나올 때부터 이상하더라니.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미국 사회가 이해가 안되었다. 눈이 온다고 학교를 안가고, 날씨가 안 좋다고 학교를 안간다. 정부도 기업도 날씨에 따라 휴업을 결정한다. 장마 중 폭우 속에서도 꼬마들이 우산을 들고 학교에 가는 한국에서 자란 나의 눈에는 미국인들이 그렇게 쉬는 모습이 이상하기만 했다. 아무리 눈이 와도 출근하고 학교 가서 할 일 다 하던 우리들이 아니었던가? 추워도, 눈이 와도 학교 수업이 취소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나에게 미국인들의 모습은 여유 내지는 ‘만사불여튼튼’이었다. 하루 일 안하면 얼마의 손해가 나는지를 수치로 정확히 계산해 내는 그들이지만, 전체적인 합의 속에 쉬면서 안전 사고를 예방하는 모습이 이제는 나의 눈에도 익숙하다. 일기예보에서 눈이 또 온다니 아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는데, 출근을 못해서 할 일을 계속 못하고 미루는 나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그나저나 왜 이리 온 몸이 쑤실까?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10-02-16

[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자원봉사, 입시, 교육

부모가 먼저 자원봉사를 하는 삶을 살다가 자녀에게도 오직 사회에 기여하도록 자원봉사를 하게 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사실 자녀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과 기여를 가르치려고 고민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이 아주 어린 나이일 때부터 자원봉사를 하도록 이끌지만, 어린 자녀들이 가서 봉사할 곳도 마땅치 않다. 결국 중고생이 되어서 자원봉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가 되면 대학 입시에 필요한 기록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자원봉사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 많은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자원봉사를 하는 이유가 입시 준비라는 점이 편치 않다. 자녀의 마음에는 사회에 대한 관심도 없고, 스스로 봉사하려는 마음,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조금도 안 보이는데, 입시에 필요해서 할 수 없이 자원봉사를 하도록 이끄는 것이 양심에 걸린다고까지 말하는 부모를 만난 적도 있다. 실제로, 전혀 마음의 준비가 안 된 학생이 부모의 강요로 자원봉사를 하러 왔다가 다른 학생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도 보았다. 정해진 시간에 늦기는 예사이고, 맡은 일을 제대로 안해서 일을 망치는 경우도 보았다. 마음에 없는 자원봉사는 ‘자원(自願)’이 아니기에 다같이 힘들기만 하다. 그런데 입시 준비를 위해 하는 자원봉사는 정말 무의미하고, 기록을 만드는 것 외에는 가치가 없을까? 수년 동안 학생 자원봉사자들을 교육하고, 일을 함께 하면서 그들의 입시를 위해 추천서를 쓰는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입시 준비 때문에 하는 자원봉사, 부모의 손에 이끌려 시작한 자원봉사라도 자녀들에게는 유익하다. 우선 모든 기관, 단체들은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정기적인 교육이 있다. 이 교육은 부모들이 미처 모르는 사회 문제와 봉사자의 마음 자세, 다른 봉사자들과의 협력 방법을 교육한다. 또 자원봉사자 한 사람의 헌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커뮤니티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려주어 자부심도 심어주며 책임감도 갖도록 한다. 부모의 권유로 시작할지라도 자녀들은 자원봉사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봉사에 대한 긍지를 갖게 된다. 매사에 공정한가(fair)를 따지기 좋아하는 미국 사회에서 자원봉사는 공정성 추구를 넘어서 관용과 사랑, 양보와 이해를 구성원들에게 가르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커뮤니티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고, 타인의 상황을 헤아려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 학생은 커뮤니티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기 전에 불법 체류자들은 모두 추방해야 하며, 그들을 위해 식품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원봉사를 시작한 후, 그들이 가난한 조국에서는 도저히 가족을 부양할 수 없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울러 힘든 일도 마다 않고 한 후 조국의 가족에게 송금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을 바꾸었다. 불법 체류 신분이기에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조차 누리기 힘든 상황에 직면해 있는 그들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법과 공정성의 잣대로만 잴 수 없는 상황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린 아이들까지 데리고 와서 무료 급식을 받는 빈민들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았지를 알게 되었다. 대가족 제도 아래, 사돈의 팔촌까지 연락을 하고, 각종 경조사를 함께 치르던 한국의 문화에서는 자주 구성원간의 갈등도 있는 반면, 타인의 상황을 그만큼 더 많이 생각했었다. 주변 사람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살면서 종종 실례를 하기는 했지만, 주변에 관심을 늘 가지고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살던 한국인들이었다. 이에 반해 미국인들은 핵가족 제도 아래 개인주의를 중요시해 왔고, 법과 계약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공정성의 가치를 중시하다 보니, 사회의 한 쪽에서 공동체 의식을 높이며 관용과 자비를 찾는 움직임이 자원봉사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도 같다. 법과 공정성을 추구하다가는 관용과 사랑을 실천할 수 없고, 관용과 사랑만으로는 자칫 무질서해질 수 있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자녀들이 균형을 잃지 않고 세상과, 사람들과 소통하고 화해하면서 사는 방법을 자원봉사는 알려준다. 어린 아이들이 공부를 진정으로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도 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 배우는 것이 있는 것처럼, 자원봉사도 일단 시작하면 얻는 것이 있다. 입시에 필요한 기록을 만들기 위해서 시작해도, 참여하는 동안에 전에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세상을 더 큰 눈으로 보게 된다. 그러니 우리 자녀의 필요에 의해서 자원봉사를 시작한다고 너무 자책하지 말자.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2010-02-08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